‘상도동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번글을 작성했습니다.
서울 동작구 중심부에 위치한 이 동네는 오랜 세월 동안 주거지로 성장해왔고, 지금은 지하철 7호선과 주요 도로망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밀집한 교육 중심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곳의 이름인 ‘상도’가 왜 붙여졌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상도동이라는 지명에 담긴 의미와 유래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시간의 흔적을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1.상도동 이름에 깃든 풍경
상도동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끔하고 단정한 느낌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상도’라는 한자어가 주는 어감이 그런 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동네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었던 건 상도동의 인상은 단정함보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풍경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언덕이 많았고, 골목은 구불구불했으며 비탈진 계단과 좁은 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숨이 찼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경사면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지형은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 속에 이미 그 단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상도(上道)’라는 명칭은 문자 그대로 ‘위쪽의 길’ 또는 ‘언덕 위의 길’이라는 뜻으로 풀이됐습니다. 반대로 그 아래쪽에 해당하는 현재의 노량진 일대는 과거 ‘하도(下道)’라 불렸습니다. 즉 한강에서 출발해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경로가 있었고 그 길 위에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상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지명은 단순히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지형에 근거한 명명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상도동의 지형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자연지형을 함께 떠올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서울은 북쪽에 북한산과 도봉산이 남쪽으로는 관악산과 청계산이 이어진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동작구는 이러한 남쪽 산맥에 인접해 있었고 전체적으로 구릉지대가 많은 특징을 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상도동은 고도가 높고 경사가 심한 지역으로, 과거에는 물자나 짐을 실은 이들이 이 언덕길을 따라 걸어야만 했습니다. 지금이야 도로가 정비되고 차량 통행이 원활하지만 당시에는 사람의 발걸음과 땀이 이곳을 오르내렸고 그 과정이 동네의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이름을 통해 지형을 추측하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상도동이라는 명칭이 실제로 생겨난 이유는 더욱 실용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상도동 일대는 예로부터 한강과 연결된 주요 이동 경로 중 하나였고 노량진 나루터에서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나르던 이들이 언덕을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한강 나루에서 물건을 내리면 그것을 머리에 이거나 지게에 져서 위쪽 마을로 운반해야 했고 이 길은 단순한 이동로가 아니라 생계와 생활의 기반이었습니다.
따라서 상도동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공간의 위치를 지시하는 용어가 아니라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언어였습니다. 지금은 버스와 지하철이 오가는 일상적인 도시 공간이 되었지만, 과거 이 언덕을 한 걸음씩 오르내리던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은 여전히 그 이름 속에 조용히 남아 있었습니다.
2.삶의 흔적이 남은 동네 상도동
상도동은 단순히 언덕 위의 길이라는 지리적 특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동네였습니다. 그 지형 위에는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촘촘하게 쌓여 있었고 상도동이라는 이름은 그 흔적을 품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상도동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며 급격히 변화한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전쟁 직후 서울은 극심한 주택난을 겪고 있었고, 사람들은 집터를 찾아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상도동의 가파른 언덕과 골짜기는 땅값이 싸고 행정적 규제가 느슨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비공식적인 마을은 나무와 흙으로 얼기설기 만든 집들로 가득 찼고 공동수도와 재래식 화장실이 일상적이었던 풍경이 오랜 세월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절 상도동은 물리적인 조건은 열악했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단단하고 따뜻했습니다. 주민들은 서로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나누고 도왔습니다. 비탈진 길 위에서 김장을 하면 아랫집에 나누어 주었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함께 놀며 자랐습니다. 명절이면 송편이 담긴 쟁반이 이웃집으로 오갔고 여름이면 평상에 모여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상도동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였습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동네의 공간 구조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길과 계단식 주택, 집 앞 마당의 감나무와 고추 말리는 빨랫줄, 담벼락 너머로 들려오는 이웃의 목소리까지. 그것은 단지 낡은 풍경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흔적이자 기억이었습니다. 지금도 상도동 골목 곳곳에서는 그러한 정서의 일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도로는 넓어지고 아파트 단지는 늘었지만 오래된 주택 사이사이로는 과거의 시간이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상도동이 다른 서울의 동네들과 달리 비교적 천천히 개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상도동 일대는 높은 지형과 복잡한 도로 구조로 인해 대규모 재개발이 쉽지 않았고 이러한 조건은 오히려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터를 지키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덕분에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오래된 골목과 단층 주택 다세대 주택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도동은 지명 하나로만 정의될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상도라는 이름은 단지 위쪽에 있는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따라 삶을 일구고 이웃과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지금의 상도동을 만들어냈습니다. 지명은 결국 사람들의 시간과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며 상도동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3.잊힌 이름과 바뀐 지명
지금은 당연하게 불리는 상도동이라는 이름도 사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행정구역으로서의 상도동은 1963년 서울시의 구역 확장과 행정구 조정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설정된 지명입니다. 그 이전까지 이 일대는 행정적으로는 경기도에 속한 외곽 지역이었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상도라는 명칭은 널리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량진 뒷산이라든가 언덕 위 마을처럼 비공식적인 표현이 더 흔했습니다.
상도라는 이름은 지형적 특징을 고려해 행정적으로 정리된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지명이 바뀌는 순간 사람들의 인식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이름이 지도에 표기되고 학교와 관공서, 우편 주소에 사용되면서 점차 상도동이라는 이름은 현실 속에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행정 용어로 시작된 이름이 일상 언어로 스며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당연히 상도동이라 불렀고 새로운 이름은 곧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동네 이름은 의외로 빠르게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듭니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면서 함께 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예전 지명에 담겨 있던 풍경과 역사 지역 고유의 문화들은 종종 새로운 이름 속에 묻히고 맙니다. 상도동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량진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생활권을 형성하던 상도 일대는 이름이 정해지기 전까지 하나의 경계 없는 마을처럼 존재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골목 이름이나 자연 지형을 기준으로 서로를 구분했고 이는 공동체 내부의 정서적 거리감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도동이라는 행정적 명칭이 부여되면서부터는 공식적으로 구획된 경계와 함께 새로운 기준이 생겨났습니다.
지명의 변화는 도시의 풍경과 더불어 사람들의 기억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상도1동부터 상도4동까지 세분화된 행정구역은 행정 효율을 높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오히려 지역 간의 정서적 연결은 약화시켰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골목의 이름은 지도에서 사라졌고 오래된 샘터나 비탈길의 명칭도 점차 잊혀졌습니다. 상도동이 길 위의 마을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 이름이 곧 주소가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상도동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울 전역 나아가 전국적으로도 도시화 과정에서 수많은 동네 이름이 바뀌었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성수동의 뿌리가 되었던 뚝섬, 행당동의 앞마당이던 금호동산, 이촌동과 서빙고 사이 사라진 중지마을처럼 한때 존재했으나 지도에서 지워진 지명들은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호칭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며 지역 정체성의 한 조각이 흩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상도동의 경우 다행히도 지형적 특성과 공동체의 끈끈함 덕분에 일부 오래된 이름과 장소는 여전히 주민들의 말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여기가 예전엔 정자나무가 있던 자리였지'라며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비공식적이고 구술로만 전해지는 이런 기억들은 공식 기록보다 더 생생하고 구체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일상의 언어야말로 도시의 역사에서 가장 소중한 자료이자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지명은 바뀌지만 그 안에 깃든 기억은 남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기억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주 되새기느냐에 따라 그 이름은 계속 살아 있을 수도 있고,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 역시 한때는 낯선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품은 공간이 되었듯, 이름이 가진 힘은 결국 시간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이름으로 기억하는 나의 도시 상도동
도시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건물은 허물어지고 길은 넓어지며 풍경은 매년 조금씩 다르게 바뀝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 속에서도 의외로 오래 남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름’입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도 그렇습니다. 지명은 표지판에 적힌 몇 글자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을 살아낸 흔적과 사람들의 감정, 그리고 그 동네가 걸어온 궤적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상도동이라는 지명을 마주할 때마다 단순한 행정 구역을 떠올리기보다 그 이름을 지탱해온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언덕을 오르며 물을 이고 나르던 이들, 골목 어귀에서 장작을 패고 빨랫줄을 걸던 어머니들, 비탈길 아래로 공을 굴리며 뛰놀던 아이들. 그들이 살아낸 하루하루가 이 지명을 도시의 한 자락으로 고정시켰습니다. 그렇게 ‘상도동’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단순한 위치의 설명이 아니라 공동체와 생활, 그리고 기억의 다른 말이 되었습니다.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단순한 정보의 습득을 넘어서 그 장소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같은 장소에 오래 살아도 그곳의 이름에 담긴 뜻과 유래를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고 나면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오르막길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역사와 생활의 증거로 보이고 낡은 담벼락이 그 자체로 귀중한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결국 도시를 더 천천히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시대에는 한 장소의 이름을 되새겨보는 일이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이동하고 쉽게 거주지를 옮기며 동네 이름도 몇 년마다 새로 익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반복되는 이동 속에서도 여전히 오래된 이름 하나가 마음에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건 단지 익숙함 때문이 아니라 그 이름 속에 우리의 시간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도 그러한 이름 중 하나로 남아야 합니다. 단순히 행정적 구분을 위한 명칭이 아니라 이 도시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삶을 기억하는 언어로 존재해야 합니다. 지금 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이 동네를 떠난다 해도 상도동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잠시라도 마음이 머무는 장소로 남을 수 있다면, 그 이름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많은 동네 이름이 사라지고 바뀌는 요즘 상도동이라는 이름이 오래도록 남기를 바라는 이유는 단순한 향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름을 통해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를 그리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