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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뚝섬과 남은 성수동 사이의 연결고리

by withmorning05 2025. 7. 22.

성수동이라는 이름 역시 도시의 속도 속에 묻혀버린 지명 중 하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단순한 행정명칭이 아니라 한때 존재했던 ‘뚝섬’이라는 지리적 공간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응축된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무심해지곤 합니다. 매일같이 지하철을 타고 성수역을 지나며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듯 마주치지만 정작 성수동이라는 동네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특히 서울처럼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서는 과거가 현재 속으로 흡수되며 이름조차도 자연스럽게 잊히기 마련입니다.

이 글에서는 사라진 뚝섬의 자취와 오늘날 성수동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천천히 살펴보며 이름 안에 담긴 시간의 층위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사라진 뚝섬과 남은 성수동 사이의 연결고리
사라진 뚝섬과 남은 성수동 사이의 연결고리

 

1.사라진 뚝섬의 이름을 기억하다

 

서울을 지도로 펼쳐 놓고 보면 뚝섬이라는 이름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춘 듯합니다. 과거에는 한강 한가운데에 솟아 있던 독립된 섬이었지만 지금은 개발과 매립 그리고 도시계획의 결과로 성수동과 서울숲이라는 이름 아래 흡수되었습니다. 그 변화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뚝섬이라는 지명이 하나의 고유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지도나 문헌을 살펴보면 뚝섬은 분명히 이름을 갖고 있었고 실체가 있는 지역으로 존재했습니다. 특히 이곳은 세곡선이 닿는 지점으로 양화진과 서강 그리고 마포 등과 더불어 한강을 건너는 주요한 나루터로 기능하였고 나룻배와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으며 물류가 집결하는 중요한 중계지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뚝섬이라는 이름은 강가를 따라 세워진 섬의 형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매년 범람하는 한강의 물살을 견디며 유지되었고 사람들은 이 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갔습니다. 이 지역은 단순한 나루터가 아니라 실제로 농경지로도 쓰였으며 봄이면 철따라 수풀이 들판을 뒤덮고 강변 특유의 경관을 형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며 자급자족의 터전을 일구었고 삶과 자연이 서로 맞닿아 있던 일상 속에서 조용히 살아갔습니다. 지금은 콘크리트 도로와 고층 아파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한때 물과 흙 그리고 사람이 함께 어우러졌던 삶의 자취가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뚝섬은 그렇게 서울이라는 도시가 성장하기 전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생존과 풍경이 공존하던 공간이었습니다.

2.성수동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등장

뚝섬이 지명으로서 점차 흐려지는 사이 서울시는 이 일대를 성수동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비하였습니다. 행정구역상 성동구의 한 동으로 편입되며 이름도 바뀌었고 기능 역시 달라졌습니다. 성수라는 이름은 한자로 풀었을 때 이룰 성과 머리 수를 사용하는데 이는 성동구의 중심이자 출발점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강 북쪽 물길을 따라 도시가 확장되기 시작한 지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이름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뚝섬이라는 옛 지명은 비공식적인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고 도로 표지판이나 지도에서도 점차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성수동이라는 이름 속에도 여전히 뚝섬의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일대를 지칭할 때 지역 주민들은 뚝섬 쪽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성수역 인근의 오래된 연립주택이나 골목 상권은 뚝섬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며 몇몇 지역에서는 뚝섬 나루 혹은 뚝섬 유원지라는 이름이 붙은 간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며 성수동은 공장과 철강 창고들이 밀집한 산업지대로 발전하였고 이는 뚝섬 시절 물류 거점 기능이 이어진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강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사람과 자원의 흐름은 이름이 바뀐 이후에도 그 맥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성수동의 오늘을 이야기하려면 뚝섬이라는 어제를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시의 확장은 단순히 공간의 확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기억의 확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수동이라는 이름은 행정구역을 표시하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뚝섬이라는 섬이 물길과 맞서며 지켜온 삶의 흔적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기억 위에 쌓인 도시의 풍경

뚝섬은 사라졌지만 그 위에 지어진 성수동은 여전히 그 기억을 품은 채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뚝섬이라는 지명이 한때 어떤 공간이었는지 조용히 말 걸어오는 풍경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컨대 서울숲에서 성수역 방면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강변과 접한 수풀 속에 오래된 돌담 조각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뚝섬의 원형을 완전히 밀어내지 않고 그 일부를 남긴 결과입니다. 과거 이 일대가 강물이 범람할 때마다 임시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보호하던 습관이 지금의 성수동 하천 구조와 제방 설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흔적이기도 합니다.

 

건축물에서도 그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성수동에는 높은 아파트나 현대식 카페 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지어진 공장 건물들과 철강창고,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된 단층 슬레이트 집들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서울이 산업화되던 시절 뚝섬 일대가 겪은 격변의 시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철도와 가까운 입지 조건은 성수동을 물류 기지로 성장시켰고 이때부터 뚝섬은 이름이 아닌 기능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수많은 물품들이 이곳을 거쳐 서울로 유통되었고 지금도 성수역 주변에는 택배 상차장이 밀집해 있어 이 지역의 산업적 흐름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뚝섬이라는 이름은 비록 사라졌지만 공간이 가진 기억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성수동이 '성수 카페거리'라는 이름으로 젊은 세대에게 각광을 받으며 급격한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오래된 철문과 낡은 간판이 보존되어 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누군가는 분명히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동네는 원래 어떤 곳이었을까. 강물이 흐르던 시절의 뚝섬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성수동은 겉보기에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심의 일각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바탕에는 강과 섬과 사람들이 함께 만든 기억이 포개져 있습니다. 도시란 그렇게 기억 위에 또 다른 층을 쌓아가며 확장해온 공간입니다.

4.이름이 지닌 힘과 잊힌 지명의 가치

뚝섬이라는 이름은 지금 우리 곁에 없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지명은 단순히 장소를 구분하기 위해 존재하는 표식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그 땅 위를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과 감정이 담긴 하나의 문화적 유산입니다. 특히 서울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옛 것을 쉽게 잊는 도시일수록 지명이 가진 상징성과 정체성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사라진 뚝섬을 떠올리는 일은 단지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공간이 어떤 시간의 층위를 지나왔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수동이라는 이름이 오늘날의 지도로 정착된 이후 많은 이들은 그저 익숙한 행정지명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이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한때 존재했던 섬과 그 섬을 따라 이어졌던 삶의 길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뚝섬은 강물이 흐르던 자리에서 사람과 짐이 오가던 교차점이었고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해 온 생태적 공간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공식적인 지도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 가치마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에 더 또렷하게 기억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서울시는 사라진 지명의 복원과 재해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뚝섬 유원지라는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도 그런 흐름의 일부이며,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이런 이름을 자연스럽게 사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이름은 공간의 기억을 되살리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성수동이라는 이름 뒤에 뚝섬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일수록 우리는 도시의 정체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뚝섬이라는 지명이 어느 순간 성수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한강변을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번쯤 성수역 근처를 걷게 된다면 발끝 아래 펼쳐진 땅에 어떤 기억이 남아 있는지를 떠올려 보게 되길 바랍니다. 이름은 단지 과거를 묻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어떤 시간과 사람들을 품어왔는지를 되묻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