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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곽 마을에서 고속터미널이 된 서초동 이름의 배경

by withmorning05 2025. 7. 23.

서초동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배경과 이곳이 어떻게 고속터미널이 들어서는 중심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 묻힌 옛 마을의 기억들을 이글에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확장은 단순히 땅의 확장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가 쌓여가는 과정입니다. 지금은 강남의 핵심 지역으로 불리는 서초동도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논밭과 마을이 펼쳐졌던 외곽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라는 거대한 교통의 중심이 들어서면서 단숨에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서초동 이름의 배경
서초동 이름의 배경

 

1.서초동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이유

서초동은 행정동으로는 서울시 서초구에 속하며 그 명칭은 ‘서쪽의 초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만 보아도 이곳이 한때 넓은 들판과 목초지가 펼쳐졌던 평야 지대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까지도 한강 남쪽의 대부분 지역은 왕실이나 양반가의 농토로 쓰이거나, 이주민들이 새롭게 정착하며 마을을 이룬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한양 도성에서 보면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고 당시에는 외곽 마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서초동이라는 이름은 서울의 남쪽이 본격적으로 도시화되기 시작하던 1970년대 후반에 공식적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강남 지역 개발을 추진하면서 마을 단위로 흩어져 있던 여러 지역을 묶고 이름을 새롭게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때 서초라는 명칭은 ‘서울의 서남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로 채택되었으며, 동시에 행정 구역 정비와 교통 계획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서울 중심지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서초동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특히 교통망이 연결되면서 이곳은 단순한 외곽 주거지에서 벗어나 핵심 교통 거점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이는 곧 서초동이라는 이름의 인지도와 상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고속터미널이 들어서기 전의 풍경

지금의 서초동을 떠올리면 빼곡한 아파트 단지와 복잡한 교통망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이 일대는 서울 중심부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처럼 한적한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논과 밭 사이로 마을길이 나 있었고 주민들은 계절마다 변하는 논의 빛깔과 함께 삶을 이어갔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진흙길이 질척였고 겨울이면 눈이 쌓인 들판을 지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서초동 일대에는 특별한 문화재나 왕실 관련 유적은 많지 않았지만 대신 자연의 지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개울과 저수지 주변에는 아이들이 뛰어놀던 소소한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고 지냈고, 명절이면 마을 회관에서 떡을 나누며 함께 지냈던 기억도 많은 어르신들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시는 도시 교통 체계를 바꾸는 계획의 일환으로 이곳 서초동에 고속버스터미널을 건설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서울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터미널을 세우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서초동을 전혀 다른 도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기점이 되었으며, 그때부터 이곳은 서울로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출입구가 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고속터미널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3.터미널이 바꿔 놓은 동네의 흐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선 이후 서초동은 더 이상 외곽 마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시외로 나가는 모든 노선이 이곳을 지나게 되었고,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가장 먼저 이 터미널을 밟고 도시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교통 중심지로 자리 잡은 이 변화는 단지 도로망의 개편에 그치지 않고 동네의 일상과 분위기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오고 가는 유동 인구는 상권의 구조를 바꿨고, 주변에는 백화점과 호텔,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도시적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초동 주민들의 삶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논밭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을길을 따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이제는 출퇴근 시간마다 붐비는 차량 행렬과 지하철 환승 인파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시골 마을처럼 조용하던 동네에는 각종 상업시설과 아파트 단지가 밀집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며 도시적인 삶의 리듬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초동은 도시의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강남’이라는 브랜드 안에서도 교통과 상업의 핵심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에는 고속터미널이라는 기반 시설이 있었습니다. 교통의 요지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자본이 몰려들었고 서초동은 도심과 외곽을 잇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일대가 더 이상 외곽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해졌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 변화가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4.서초동 이름과 현실 사이의 간극

서초동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넓은 들판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서초동을 둘러보면 그 이름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먼지를 알 수 있습니다. 들판 대신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지고 그 위로는 빌딩의 그림자가 겹겹이 드리워졌습니다. 터미널 주변에는 도시적 기능을 수행하는 수많은 구조물들이 들어섰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자신만의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서초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 일대에는 오래된 주택가와 좁은 골목들이 남아 있고 그 안에서는 과거의 정취가 조용히 머무르고 있습니다. 간혹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 논두렁과 개울가를 따라 걷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고속터미널이라는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네 어귀에 남아 있는 오래된 정자나 작은 성당 같은 공간들은 여전히 마을의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서초동의 변화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외곽이 중심이 되고 이름의 의미가 바뀌어도 사람들의 기억은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도시를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 스며든 과거의 풍경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초동이라는 이름은 단지 지리적 좌표가 아니라 도시가 품은 시간의 궤적을 담고 있는 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