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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에서 건너온 천호동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by withmorning05 2025. 8. 4.

서울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천호동은 오늘날 대규모 상업지와 주거 단지로 유명합니다.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이 교차하며 강동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곳의 이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천호동이라는 지명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 아니라 한강의 중요한 나루터였던 광나루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한양으로 드나드는 사람과 물자가 한강을 건너기 위해 광나루를 이용했으며, 이곳을 거쳐 주변 마을들이 생겨나고 발전했습니다. 천호동은 그중에서도 강을 건너 정착한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광나루와 천호동의 관계를 살펴보고, 지명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추적해 보겠습니다.

 

광나루에서 건너온 천호동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광나루에서 건너온 천호동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1.광나루가 한양 동쪽의 관문이었던 이유

광나루는 조선시대부터 한양의 동쪽 관문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강은 서울을 둘로 가르며 흐르고 있었고,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나루터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중 광나루는 지형적으로 강폭이 넓지만 물살이 완만하고 강바닥이 단단해 배가 오가기에 적합했습니다. 이런 조건 때문에 조선 초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사용되었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관리와 상인들이 한양에 들어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광나루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여객과 화물을 실어나르는 배가 모여들었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위한 주막과 여관, 시장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에서 지방의 특산물이 집결하고, 한양으로 공급되는 곡물과 생필품이 거래되면서 광나루는 단순한 나루터를 넘어 경제적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한강을 통해 남쪽의 충청도와 전라도, 동쪽의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으며,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는 물자도 대부분 광나루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광나루가 이처럼 중요한 이유는 교통과 물류뿐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양을 지키는 동쪽 길목으로서 군사 이동이 필요할 때 광나루를 건너 동쪽 지역으로 진출하거나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전략적 가치는 한강에 다리가 건설되기 전까지 광나루가 오랫동안 사용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습니다.

 

2.천호동이 형성된 과정과 지명의 유래

천호동이라는 이름은 광나루를 거쳐 강을 건넌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생겨났습니다. 조선 후기부터 지방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인구가 증가하자 광나루를 이용해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강동 지역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한강 남쪽으로 건너오면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고, 농사를 짓기에 좋은 토양과 물이 풍부했습니다. 이런 자연환경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천호(千戶)’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천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이 정도 규모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고, 관청에서 행정적으로 이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천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구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광나루를 통해 유입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룬 커다란 마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천호동은 농업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한강과 광나루 덕분에 교역과 상업이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 물자를 운반하거나 한양으로 공급하기 위해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시장과 숙소가 늘어났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천호동은 단순한 농촌 마을이 아닌 상업적 기능을 갖춘 동네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늘날 천호동은 고층 건물과 번화가로 변했지만, 그 시작은 한강 나루터와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만든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지명 속에는 당시 사람들이 서로 모여 힘을 합쳐 마을을 이루고, 강과 함께 살아온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3.도시화 속에서 달라진 천호동의 모습

20세기 중반 이후 서울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천호동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원래 농경지와 한강 나루터 주변에 형성된 작은 마을이었던 천호동은 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점차 주거지와 상업지로 재편되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 한강 종합 개발 사업과 함께 강변 제방이 정비되고 도로가 확충되면서 이 지역은 서울 동부의 교통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광나루가 더 이상 나루터로서 기능하지 않게 되면서 천호동의 전통적인 강 건너기 경로는 사라졌지만, 대신 광나루 일대에 현대식 교량과 도로망이 구축되어 강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강 남북을 잇는 생활권이 확대되었고 천호동은 한강을 따라 발달한 주거지 중에서도 인구가 밀집된 지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도시화와 함께 전통적인 농업 중심의 생활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신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업 시설, 학원가와 시장이 들어서면서 천호동은 현대적인 도시 생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광나루와 강을 건너 정착했던 사람들의 흔적은 천호동의 지명과 일부 오래된 골목길, 오래된 시장의 모습 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도시의 변모가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강을 기반으로 형성된 마을의 기억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4.이름에 남은 나루터의 역사와 현재의 의미

오늘날 천호동을 걸어다니다 보면 과거 나루터의 풍경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지명 속에서 그 역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천호’라는 이름은 광나루를 거쳐 강을 건넌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든 마을에서 비롯되었으며, 천호동이 도시화된 이후에도 이 이름은 변하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천호동의 발전 과정은 한강과 나루터가 서울의 공간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루터는 단순한 교통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며 마을을 형성하게 한 기반이었습니다. 광나루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은 천호동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삶을 일궜고, 이들이 모여 살아가며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천호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났습니다.

현대의 천호동은 교통과 상업, 문화가 발달한 번화가이지만 지명은 여전히 강과 나루터를 기억하게 만드는 역사적 유산입니다. 이는 도시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땅과 이름이 지닌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천호동의 거리를 걸으며 한강을 바라보면 강을 건너던 사람들의 발자취와 마을을 일궜던 옛 이야기가 여전히 이 땅에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