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동대문 바깥쪽 풍경이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시장 골목과 오래된 주택 사이를 지나가다 보면 창신동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옵니다. 요즘 서울에서 창신동을 기억하는 방식은 주로 봉제골목이나 낙산 아래의 낡은 골목길처럼 시선을 끄는 장소로서이지만 정작 이 동네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왜 ‘창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저 오래된 동네라는 막연한 인상만 갖고 있었는데 동대문 너머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따라 걸으면서 창신동이라는 지명에 얽힌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1.성곽 바깥 삶터로 시작된 동네
창신동이라는 이름은 창의문과 신설동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이 동네는 조선시대 한양의 동쪽 성곽 바로 바깥에 놓여 있던 마을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대문 밖의 자연촌락이었던 이 지역은 성 안보다 한발짝 물러난 공간이었고 그렇기에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민간의 삶에 가까운 일상들이 더 많이 남아 있는 동네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가 ‘비계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이름 그대로 ‘비탈진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성곽을 기준으로 동쪽은 무역과 장터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이었고 창신동은 그 뒷자락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삶이 조용히 이어지던 공간이었습니다. 집은 골짜기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비탈진 언덕은 오히려 외부로부터 조용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성곽 안의 양반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살아내던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고 일상의 풍경은 정제되지 않은 도시의 민낯처럼 거칠지만 정겨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창신동의 지형은 평지가 아닌 구릉지대로 이뤄져 있었고 높은 곳에서 보면 집들이 층층이 얹혀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런 입체적인 지형은 당시 도시계획에서는 무시됐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공동체를 만드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골목은 좁았고 계단은 가팔랐지만 이웃 간의 소통은 활발했고 비탈진 지형은 그 자체로 삶의 조건이자 경계였습니다. 창신동은 그렇게 도시 외곽이라는 위치 덕분에 한양의 중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생활의 결이 오롯이 남아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2.시장과 봉제 그리고 사람들의 손
해방 이후 서울의 산업 구조가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면서 창신동 역시 그 흐름을 비껴갈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동대문과 가까웠다는 이유만으로도 봉제 산업이 뿌리내리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대형 시장인 동대문종합시장과 연결되면서 창신동은 자연스럽게 옷을 만들고 수선하고 납품하는 봉제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좁은 골목 안에는 봉제공장이 들어섰고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집 건너 하나씩은 재단사가 있었고 마당에는 실타래와 천 조각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창신동은 단지 일하는 동네가 아니라 손으로 살아가는 동네였습니다.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미싱을 돌렸고 그 손끝에서 나온 옷들은 동대문을 거쳐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창신동 골목을 걷다 보면 지금도 벽에 걸린 간판들 사이로 ‘봉제’라는 글자가 심심찮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 간판은 낡았지만 그 안에는 도시의 기반을 떠받치던 수많은 손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창신동이 봉제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기까지는 단순한 입지 조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동네가 오랜 시간 공동체의 형태를 유지해왔고 이웃끼리 기술과 정보를 나누는 문화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골목이 좁고 경사가 가팔라도 사람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도시의 경제가 커지는 동안에도 창신동은 여전히 손으로 만들어낸 질서 속에서 살아갔고 그 흔적은 지금도 오래된 건물과 사람들의 표정 사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3.골목에 쌓인 시간의 무늬
창신동의 골목은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낡은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지만 그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확연히 다릅니다. 이곳의 집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오랜 시간 함께 버텨온 듯한 인상을 주고 벽돌과 담장 그리고 골목 모퉁이 하나하나에 쌓인 흔적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응축된 장소임을 말해줍니다. 비탈진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때로는 반쯤 열린 대문 너머로 미싱 소리가 아닌 조용히 흐르는 라디오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그 순간 이곳이 여전히 누군가의 현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한때는 동대문 상권과 맞닿은 봉제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시계 바늘은 언제나 앞으로만 움직였고 창신동 역시 도시의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천천히 조용히 풍경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사라지고 젊은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건 닫힌 작업장과 텅 빈 창고뿐이었고 이 동네는 더 이상 생산의 거점이 아닌 기억의 골목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창신동이 지닌 무늬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과 골목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이 지금까지도 재개발 바람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낙산이라는 지형 덕분이었습니다. 가파른 언덕과 복잡한 골목은 아파트 단지나 대형 건물이 들어서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오히려 옛 구조가 그대로 남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골목을 걷다 보면 1970년대의 붉은 벽돌과 1980년대의 철제 창틀 1990년대의 조그만 상호가 새겨진 간판 위로 시간이 겹겹이 덧입혀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흔적이 낡고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시절의 시간이 한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골목은 하나의 거대한 기억 저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창신동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동네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가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 또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이 지워지고 무엇이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지금도 이곳의 좁은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은 낡은 벽 하나 문짝 하나에서 익숙한 듯 낯선 감정을 떠올리고 어떤 이에게는 그 기억이 유년 시절의 풍경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한때 자신이 살았던 집의 기척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창신동이라는 동네는 단지 오래됐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오랜 시간이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남겨진 특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4.이름이 지켜낸 동네의 자리
창신동이라는 지명은 그 자체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이름을 풀어보면 ‘베풀 창’에 ‘믿을 신’자를 써서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고 도움을 주는 공간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 이름이 지어진 배경에는 행정구역 개편과 같은 현실적인 사유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이름은 이 동네가 살아온 방식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성 밖에서부터 시작된 삶의 흔적들이 언덕을 타고 오르며 정착하고 동대문과 맞닿은 위치에서 봉제라는 산업을 일궈냈던 이 동네는 다른 어떤 동네보다도 더 분명하게 사람들의 손과 발 그리고 눈물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서울이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래된 동네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거리의 풍경은 낯선 얼굴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지명을 지킨다는 건 단지 행정상의 구분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름은 기억을 보존하고 흔적을 남기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장소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창신동이라는 이름 역시 이 도시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를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골목 어귀에서 마주치는 오래된 간판이나 벽돌 건물 하나가 예기치 않게 마음을 흔들기도 합니다. 익숙한 듯 낯선 그 순간 우리는 도시에 새겨진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이름이 왜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창신동이라는 이름은 서울의 중심이 아니면서도 서울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그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이야기를 가진 동네들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창신동은 그런 동네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골목이 남고 골목에 사람이 남고 사람을 품은 이름이 남는다면 그 이름은 단지 행정지도 속의 단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의 변화는 멈출 수 없지만 이름이 지켜주는 동네의 자리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사람들을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