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4 개성 상인이 모여 살았다는 회현동 이름의 비밀 회현동이라는 이름은 지하철역 이름이나 남대문 시장 근처 거리 간판에서 종종 눈에 띄지만 그 의미나 유래를 생각해본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회현’이라는 두 글자는 고유명사 같으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던 도시의 경제 중심지라는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회현동이라는 이름에 담긴 지리적 특성과 역사, 그리고 개성 상인의 흔적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한양 도성 아래에 자리한 회현동 이름의 기원조선시대 한강은 오늘날의 도로와 철도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교통망이었습니다. 육로가 발달하기 전까지 사람과 물자는 대부분 강을 따라 이동했고, 나루터는 한양과 지.. 2025. 8. 1. 삼청동은 왜 맑고 바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삼청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북촌과 인사동을 잇는 골목길을 먼저 떠올립니다. 고즈넉한 한옥과 갤러리, 전통 찻집이 이어져 있는 삼청동은 현대 서울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간직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네가 왜 ‘삼청(三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삼청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 맑음’을 의미하는데, 이 말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자연에 대한 인식이 녹아든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삼청동은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그 뿌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시대 도성 북쪽 외곽에 위치했던 이 마을은 유난히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했으며, 사람들의 마음가짐 또한 곧고 정직하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삼청.. 2025. 7. 30. 수표교에서 멀지 않았던 수유동의 이름 이야기 서울에는 강과 하천이 많았고 이 물길을 건너기 위해 수많은 다리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수표교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중요한 교량으로서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중심지였습니다. 오늘날 이 다리는 청계천 복원 사업과 함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다시 모습을 드러냈지만, 사실 이 수표교의 기억은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지금의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동이라는 동네 이름에는 수표교와 맞닿은 옛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유동을 북한산 자락의 주거지로만 떠올리거나 지하철 4호선 종점역 근처로 기억하지만 그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수유동이라는 지명은 단순히 한자를 조합한 행정명칭이 아니라 조선시대 도성 주변의 교통로와 수표교를 잇는 수운(水運)의 길목이.. 2025. 7. 29. 숲과 종이 공장이 만나 탄생한 이름인 신림동의 과거 신림동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학원과 고시촌의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어원과 풍경을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림'이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숲'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과거 이 일대가 숲이 우거진 산자락 아래에 놓인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단지 수목의 풍경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목재를 가공하거나 종이를 만들던 시설이 생겨나면서 이 숲은 산업과 결합하게 되었고 결국은 도시 안에서 가장 변화가 빠른 공간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됩니다. 지금은 높은 아파트 단지와 넓은 도로망, 그리고 대형 학원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땅속에 켜켜이 쌓인 흔적들은 여전히 숲의 정서와 종이의 기억을 간직한 채 존재합니다. 신림.. 2025. 7. 27. 개성 상인이 모여 살았다는 회현동 이름의 비밀 회현동이라는 이름은 지하철역 이름이나 남대문 시장 근처 거리 간판에서 종종 눈에 띄지만 그 의미나 유래를 생각해본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회현’이라는 두 글자는 고유명사 같으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던 도시의 경제 중심지라는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회현동이라는 이름에 담긴 지리적 특성과 역사, 그리고 개성 상인의 흔적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한양 도성 아래에 자리한 이름의 기원회현동은 서울 중구 남산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 시대에는 ‘회현방’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서울은 도성 안과 밖을 기준으로 지역이 나뉘었고 회현은 도성 남문인 숭례.. 2025. 7. 27. 도성 밖 절이 있었던 사당동 이름의 과거를 찾아서 사당동이라는 지명은 서울을 오래 살아온 사람이라면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이름입니다. 지금은 대형 아파트 단지와 교통의 요지로 자리 잡은 이 지역이지만, 본래 이 땅의 이름은 사찰과 관련된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도성의 바깥에서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던 절 하나에서 시작된 사당동이라는 이름의 뿌리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단순한 동네의 이름이 아닌, 조선의 제도와 백성들의 삶이 얽힌 이 작은 지역의 역사는 지금도 사당동 골목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1.조선의 수도를 감싸던 도성의 경계서울의 중심은 과거 한양으로 불렸던 조선시대의 수도였습니다. 이 중심부를 둘러싼 내사산과 외사산은 도성이라는 명확한 경계를 만들어주었고, 이 도성의 안과 밖은 신분과 기능에 따라 공간이 구분되곤 했.. 2025. 7. 27. 이전 1 2 3 4 다음